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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드서핑 "첫 Olympic game" 이야기

정상대 2017-11-23 (목) 22:40 2개월전 192




윈드서핑 "첫 Olympic game" 이야기



어제 저녁 KBS 9시 뉴스 보도와 

같이 이태훈선수가 Asian RS:X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돌아 왔다. 축하한다.  경기내용을 보면은 숙적인 일본 JPN11 Tomizawa를 잡았고 또 총 10개 경기중 8개 경기에서 1위였다.  우리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Olympic 메달 가능성도 엿보이는 듯도 하여 윈드서퍼들의 가슴을 슬레이게 하고 있다. 

때마침 평창 Olympic 성화점화가 "카운트 다운"" 되고 있어 우리나라는 모처럼 'Olympic 무드'다.  Olympic 이야기만 나오면 사실은 우리나라 윈드서퍼들은 아직 "메달"을 못따봐 가슴이 미어진다.


Olympic 
에서 

윈드서핑경기 시작은 30 여년 전 1984년 LA Olympic 때 부터이다. 

그때 Olympic에서 이 ‘윈드서핑’ 경기를 처음 시작한다는  뉴스가 흘러나왔을때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  윈드서퍼들은 어리둥절 하였다.  윈드서핑 이라는것을 배워 타고 있었지만은 이 윈드서핑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  무슨 놀이기구 인지 아니면 무슨 스포츠인지 그 성격이 아직은 애매한 상태였다.   Olympic 에서 경기를 시작한다니까 .. 야 !  그렇구나 !  '윈드서핑' 라는게 "격"이 있는 '스포츠' 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게하였다.


이렇게 윈드서핑이 
세상에 태어나자 마자 바로
 Olympic 종목이 될 만큼 전 세계에 급속도로 퍼진것은 윈드서핑이 태여난 그 시점이 시대적으로  칼라 TV와 동시에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이라 한다.

칼라TV방송이 시작되면서 부터 사람에게는 일찍이 느끼지 못하였던 온갖 감정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고 한다. 길 거리의 간판들이 변하기 시작하였고 여자들의‘펫션’이 바뀌기 시작하였다.  또한 사람들이 심리적으로도 뭐 좀 화려한것을 추구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한다


그때 Olympic 보드를 

어느 board로 경기를 할것인가가 첨예한 관심이 되었다.  윈드서핑은 처음 미국에서 개발이 되어 졌고 하와이에서 큰 경기가 주도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만약 Olympic에서 윈드서핑 경기를 하면은  미국 Original 제품인 Windsurfer 보드로 경기하는 것이 당연시 여겨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독일 Ostermann 의 윈드글라이드 (Windglider)로 경기를 하였다.




Olympic 보드는 ”Windglider



Olympic 보드 종목을

결정하는 기구는 IYRU라는 단체였다. IYRU는 요트경기종목을 관장하는 IOC(국제올림픽위원) 산하기관 이다.  IYRU는 그후 명칭을 ISAF로 바뀌었다가 현재는 World Sailing 으로 이름이 바뀌어져 있다. 

IYRU는 Windglider를 선택하면서 Windglider 모델이 폴리에틸렌 프레임과 전반적인 유용성으로 보아 “'하나의 디자인' 으로 Olympic 경기에 적합하다는 선정이유를 발표했다.  미국이 피를 본 셈이다.

Windglider

Olympic 보드로 결정이 되어지자 그 값은 금방 천정 부지로 올라갔다.  Mistral을 비롯하여 보드회사들이 탐을 내기 시작했다.   결국 Windglider는 BIC이라는 회사로 넘어간다.  BIC는 하루 아침에 엄청 커진다.  이를 계기로 BIC 는 윈드서핑 보드를 독일에서만 년 80,000개를 찍어내어 팔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Windglider는 기대와는 달리 84년 LA Olympic경기 단 한번에 그치고 만다. 수명이 상당히 짧았다.  4년후에는 “디비전 투 Division II”라는 새로운 보드에 그냥 밀리고 만다. 경쟁이 그만큼 치열했다.


Windglider는

독일 사업가 프레드 오스터만 (Fred Ostermann)라는 사람이 1976년에 설계한 것이라 한다

길이가  3.9 m에 4Kg에 바우 헤드에 끈이 달려 있다.  데거보도(dagger board)가 있었지만 발을 끼는 풋스트랩(footstrap)이 없이 설계되어 졌다.  그래서 발을 끼지 못했다.  세일은  6.5m로서 지금으로 보면은 적은 편이다.


LA Olympic 에서는

'윈드서핑 규정'이 따로 없어 일반 요트규정에 따라 일반 요트와 같이 경기를 시작했다.  요트경기 규정에서는 펌핑(pumping)을 하지 못하게 돠어 있다. 그 유명한 42조 규정이다. 윈드서핑도 42조 규정에 따라 펌핑을 하지 못하였다.


범핑 뿐만 아니라 “하네스(harness)”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보드에 발을 끼는 풋스트랩이 없으니  발은 아예 낄수도 없었다. 그래서 선수들은 오로지 붐(boom)만 잡고 가만히 타야만 했다.



Olympic 선수들도  많이 넘어져


하네스를 못걸고 풋스트랩이 없어  

발도 못끼고 붐만 잡고 타다보니 문제는 강풍이 왔을 때 였다.  강풍이 세계 불어와도 버티는 길밖에 없었다.  첫 Olympic경기를 하면서 선수들이 엄청 고생한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강풍에  버티는것도 한계가 있어 그때 많이들 넘어 졌다고 한다.  당시 선수가 넘어지는 것은 그냥 예사로 여겼다.  하네스문제. 풋스트랩 문제. 그리고 펌핑문제등 이들 문제를 두고 Olympic 초창기에는 많은 혼란을 껵었다   그 다음은 88 서울 Olympic때 까지도 혼란을 격다가 1992년 바르세나 Olympic에 가서야 대부분 정리 되어졌다.

1
984 LA Olympic은 38개 국가가 출전했다.

처음하는  Olympic 이라 예선전 없이 Open으로 출전을 희망하는 국가는 다 출전할수 있었다.

로스앤젤레스의 ” Long Beach”해변에서 경기가 진행했는데  7 경기를 하여 네덜란드 Stephan van den Berg 금메달로 우승 하였다.

우리나라는 뚝섬에서 살고 있었던  조진섭 선수가 출전하여 34위를 했다. 조진섭 선수는 지금 인천에서 살고 있다.


이때 1984년 첫 Olympic때 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윈드서핑은 30여년 동안 한번도 빠짐없이 출전을 시켜 왔다.  Olympic은 그냥 출전하는것이 아니다.  예선전에서 출전권을 따야야만  출전 할수가 있다

양궁 . 유도. 축구. 핸드볼등 우리나라의  Olympic에  강한 종목들도  예선전에서 출전권 흭득에 실패를 하여 Olympic에 빠짐없이 출전을 하지는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한번도

빠짐없이 출전을 해가는 종목은 태권도와 윈드서핑 두 종목이다.

태권도는 Olympic때 마다 출전권 흭득에 성공하여 Olympic 때 마다 빠짐없이 출전시커 왔다.  태권도는 우리나라와 관계가 많아선지 Olympic 본선에 나가서 금메달까지 많이 따고 있다.


그러나 윈드서핑은 태권도와는 달리
Olympic 출전권 따기서 쉽지 않은 종목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선 비인기 종목이다.  그동안  탈락의  위기도 많았다.   하지만 아직 한번도 빠짐없이 Olympic에 계속 출전을 시켜 온 것이다.  이것은 하늘이 도와 주어 여기까지 왔다.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네델란드 영국등 몇 개국가에 불과하다.




이번 "승리 무드"를 살려서



앞으로 만약 Olympic 에서 

윈드서핑이 '메달'이라도 하나 따게 되는 날 그때는 다른 종목이 금메달 따는 것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그때서야 신문이나 방송에서 윈드서핑이 Olympic에 한번도 빠짐없이 출전시켜 오기까지 그 과정을 크게 보도하게 될것이다.  


그때서야 온 국민들은 
그 모든 것을 다 알고서 30 여년동안 남모르게 Olympic에 출전시커온 윈드서핑 가족들의 '고난의 세월'을  이해하고서 “함성”이 터질 것이다.  


이태훈 선수의

이번 Asian RS:X 대회 승리소식은 우리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해주는 느낌이다.  

이번“ 승리 무드”를 살려서 한국의 모든 윈드서퍼들은  일치단결하여 어떻게 하든 이번 Tokyo Olympic에  메달을 하나 딸수 있도록  우리의 모든 힘을 한번 다 모아 보았으면 좋겠다.


대한윈드서핑카이트보드연맹 고문 정상대 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O1TKRo4y-Y&t=15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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